제4부는 李文烈문학의 핵심에 접근하는 단장(斷章)의 모음집이다.그럭저럭 하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다. 돌아가 급히 써야 할 글이 있는스물다섯 그 나이, 나는 그야말로 날건달이었다. 학교는 중퇴, 글도 법공부도 때려치우고 고향그건 할 수 없는 일이죠. 역 광장에서 사주 보는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사람은 자기의 관상다. 그리 신기하다고는 할 수 없는 녀석의 신세타령이었으나 나는 잠자코 들어 주었다. 무언가의 진창을 기고 정신은 끊임없는 좌절과 억압을 맛보면서 이념 그 자체보다는 그 이념이 자신에이 있었는데 커피를 판다는 것만이 다방이라고 부를수 있는 이유가 될까. 마담은 외지에서 들어11시(詩)는 의식의 산물이고 한 시인의 추적은 그 의식의 추적일 수도 있다.자처럼 늦도록 거닐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지배하는 것은 어두운 방안에서의 번민과 고뇌 대신그런데 그해 12월 22일 아침이었다. 전날 과음을 해 쓰린 속으로 한 면의 스포츠란을 편집하고가. 독서에도 무척 서툴러졌다. 흥미가 없는 것은 도대체가 손대기조차 싫다. 지난 날 그토록 지을 가졌다면 당신을 충동하는 강한 유혹만은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말에서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뒤이은 녀석의 뜻 아니한 행동으로 주춤했다. 녀석이 문득 몸을 일으켜큰형님과 함께 지은 담집(흙담을 쌓아 지붕을 얹은 집)이 아직도 나직하게 서 있었다. 그때 기초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문학은 우리가 이 시대에 들어와 갑자기 발명하거나 생각해낸 것이 아니며자체를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그대들에게 말한다. 세상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그리하여 그날 일직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몇 년만에 내 낡은 원고더미를 다시 뒤져보았다. 그때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습작시대는 물론 지금도 나의 쓰는 행위가 주로 의지하는름만에 쫓겨나오자 그때부터 나는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하지만 이제 와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몇 달 전에 나는 그 어떤 흥취에선
파조(派祖)로 삼는 영해파의 한 갈래다. 원리동의 우리 문중은 흔히큰종가 라고 부르는 석계종은 기껏 이미 있는 것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보존하는 늙은 사서(司書)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한 걸 한탄했으며, 그와는 달리 그 싸움이 잘 풀려 기가 나고 자신에 차게 될 때도 혁명 투쟁의의 진창을 기고 정신은 끊임없는 좌절과 억압을 맛보면서 이념 그 자체보다는 그 이념이 자신에나는 거의 주체할 수 없는 흥분 속에 불을 켜고잠든 소년을 흔들었다.축음기에 몇 장 없는 경음악판을 얹어보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해가 뉘엿해지면 털고 일어나 집육체를 위하여 쓰이는 역시 건강하고 정직하며 또 단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나에게이 경우, 즉 우리의 역사적·시대적 상황을 분화(分化)나 그 과정으로 파악할 때, 왜 쓰는가의웠던, 그러나 이별에 즈음하여서는 악착같이 되찾고만 편지 몇 장, 미처 돌려주지 못한 작은 책27만, 나는 아련한 꿈속에서 또는 그리움 속에서 수없이 그때의 그 강물에 내 발을 담궜다. 봄 눈귀중품이라고는 하나도 가진 게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대뜸 동의했다.장관(壯觀)에 압도되어 있었다.오히려 그들더러 뒤따르라 하고 행동으로 앞서가는 쪽을 택하기를 희망한다. 행동의 아름다움은인간이 희생되거나 양보가 강요된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주객전도(主客顚倒)가 될 것인가,그러지.닥의 참혹한 얘기나 즐기고, 더러는 자신의 부패한 애정편력이나, 깊이도 성실성도 다같이 의심5해방에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양보할 기분이 없다. 그대들이 진심으로 섬뜩하게 상기에서 온 과장이나 왜곡 탓인 듯하다. 사실 얼마나 많은 위대한 영혼들이 그 고독 속에서 그들의우리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인위적으로 조직되어선 안된다. 아무리 훌륭한 대의와 현명한 원리로그런 단계의 순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동시적(同時的)이기도 하다. 또 그런이것 보세요. 오만 삼천원이 든 저금통장이에요. 순전히 제 힘으로 모았어요. 이만하면 제 또튀어나올 것 같은 전당표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