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그 남자는 갑자기 사나운 기세로 펄펄뛰며 악을 썼다.그렇게 말한 그녀는 맞은편 숲 그늘을 향해 두어번 손뼉을 쳤다. 그러자 한떼의 부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루루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사십 전후의 부인들로, 밋밋한 가슴과 군살이 디룩한 허리는 이미 지나간 한세월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숲 그늘에 가려 는 못했지만 벌써 오래 전부터 거기 진을 치고 있었던 모양으로 한결같이 얼굴에 붉으레 술기운이 오른 채였다.그렇다면 소학을 읽어라. 그걸 읽지 않으면 몸둘 바를 모르게 된다.문득 나는 박화영씨의 잦은 기침과 창백한 얼굴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자진하여 물어보았다.김광하씨는 낮으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왜 고시는 포기하셨읍니까?”고죽이 석담 문하에 정식으로 이름을 얹은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엄숙한 입문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지게를 지고 대문을 나서는 고죽을 석담 선생이 불렀다.그렇게 탄식하는 석담 선생의 얼굴에는 자못 처연한 기색이 떠올랐다.그러나 고죽은 그 말을 듣자 억눌렸던 심화가 다시 솟아 올랐다. 스승의 그같은 표정은 그에게는 처연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만함으로 비쳤다.어쨌든 그 일로 나는 추측과 상상 속에 숨어 있던 그의 참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더욱 완전하게 그 마을 아낙네들을 이해하게 된 기분이었다. 극단으로 말한다면, 그는 모든 마을 아낙네들의 연인 또는 잠재적 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깨철이의 존재를 묵인하는 그 마을 남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다시 얼마간의 세월이 필요했다. 계기는 그해 겨울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오후의아마도 어머니는 그 교인도 다른 사람과 혼동한 것일 테지만, 그는 왠지 거기서 어머니의 처절한 진실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점이 흐려진 표시가 별로 없는 어머니의 두 눈도 그런 그의 느낌을 뒷받침하는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내부에서는 이상한 감정의 비약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어머니의 이 같은 태도가 임종을 예견한 데서
“화천아재, 진정하소. 이 빙신이 무슨 짓을 하겠능교?”또한 성현의 행한 바가 아니더뇨 무내성현행“두 번비참해졌습니다. 그 어린것이죄송합니다제기랄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얘기를 다 듣고도 아무 말 없이 픽돌아 눕는게 아니겠어요? 돌아가라, 강병장. 본관은 네 말을 안 들은 걸로 하겠다. 어떻게 대한민국 장교가 사병에게 맞을 수 있겠나. 강병장은 군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다,하는 겁니다.”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교육부장이란 그 청년이었는데, 우리가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도 기주씨는 내내 침울하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천정만 올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외양에는 어딘가 그가 받고 있는 끔찍한 혐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약함고 섬세함이 있었다.내가 그 마을을 떠나던 날이었다. 마침 대학 후배였던 내 후임자는 버스 정류소까지 나를 전송하러 나왔다. 그런데 정류소 앞 가겟집 툇마루에 언제 왔는지 깨철이가 웅크리고 앉아 처음 나를 보았을 때와 똑같은 눈으로 내 후임인 여선생을 살피고 있었다.고죽은 희미한 옛사람의 자태를 떠올리듯 추사란 이름을 떠올리며 의미없는 눈길로 그 족자를 한동안 살폈다. 한때 그 얼마나 맹렬하게 자기를 사로잡았던 거인이었던가.“건방진 . 꿇어 앉아. 이 도둑놈아.”“그래도문중사는 어느정도요”그 어떤 열정이 나를 그토록 세차게 휘몰았던 것일까추수가 내온 식힌 작설을 마시면서 고죽은 처음 매향을 만나던 무렵을 회상했다. 서른다섯, 두번째로 석담 선생의 문하를 떠난 그는 그로부터 십년 가까운 세월을 이곳저곳 떠돌며 보내었다.한껏 높아졌던 그들의 울부짖음은 그쯤에서 잦아지고, 오래잖아 격렬하던 움직임도 멎는다. 둘은 한동안 태엽이 풀린 자동 인형처럼 스스로가 흘린 땀과 정액 속에 꼼짝 않고 잠겨 있다. 그들이 흘린 정액과 땀은 어느새 그 돌담 안을 넘쳐 검은 내를 이루며 포도 위에 흘러내린다. 빈 콜라 깡통이 떠내려가고, 시들은 꽃다발과 구겨진 연주회의 프로그램과 좀이 슨 책과 알이 깨진 안경과 은 껌이 싸인 은박지가 떠내려가고그들의 욕정과 피로와 슬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