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은 겨우 세 블럭 떨어진 곳에 있었다. 두 사람은 우르비노 박사가 마부에게 지시를 내린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는 거의 30분 가량이 걸렸기 때문이다. 두 소녀가 주빈석에 앉고 그는 마차 뒷쪽을 향해 그들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돌리고 허공 속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그날 그녀는 여 주인으로서 대통령 전용실을 차지했다. 선장은 삼페인과 훈제 연어 요리로 우르비노 다자 박사 내외와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식사 대접했다. 선장의 이름은 디에고 사마리타노였는데 구두부터 모자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흰 린넨 제복을 입고 있었다. 모자에는 금박실로 RCC 선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른 선장들처럼 그도 사이바 나무처럼 건장한 체격에다가 거만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태도는 플로렌스의 추기경 같아 보였다.난 누구지 ?편지는 그가 전에는 그렇게 많이 쓴 적이 없는, 6장이나 되었다. 편지는 어조나 문체 또는 그의 사랑을 고백하는 수사적인 표현은 담지 않고 편지의 맛이 배제된 조리있고 정중한 어투로 쓰여졌다. 어떻게 보면 그 편지는 그가 결코 쓸 수 없었던 상용 편지에 가까웠다. 몇년 후에는 타자로 친 개인의 사사로운 편지는 거의 모욕으로 간주되었지만 그 당시로는 타자는 여전히 사무용으로서도 무례하다는 취급을 받았고 개인이 집에서 타자를 사용하는 것은 예의상 책 속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선두적인 편지였다. 페르미나 다자도 분명히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보낸 그녀의 두 번째 편지는 강철로 된 펜보다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읽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말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페르미나 다자의 아들인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자세가 웬지 어색하였다. 게다가 즐거울 때나 혹은 화를 낼 때는 갑
바로 그 당시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여성의 외모와 그 여성의 사랑에 대한 상관 관계에 관한 단순한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악어를 날것으로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면서도 잠자리에서는 가장 수동적인 신경질적인 형은 싫어했다.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한시도 빼놓지 않고 생각나는 큰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어떠한 사랑도 그 값은 치르기 마련이지만 사랑이 아니라 카리비안 해운회사에서 임금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였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그녀를 인사 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무척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인사부장은 그녀에게 잡화부의 가장 낮은 직급을 주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신중하고 예의바르게 3년 간을 헌신적으로 일했다.그들은 호텔 창문을 통해 슬픈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세 번째 추억은 1월의 첫 눈이 내린 무렵 오스카 와일드를 우연히 만난 일이었다.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시인의 제전에 참석한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해마다 그 제전울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도 그의 모습을 보았었지만 그녀는 그가 오로지 자기만을 보려고 그곳에 있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더듬은 것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전날 밤 자신이 그의 손을 기다렸듯이 자기 손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손은 떨렸고 플로렌티노의 심장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그는 드라머틱 극장에 코르토카잘스 티바우드 3인조 악단을 데려오려고 후원자를 모집하는데 1년을 보냈으며 정부에서조차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수사극을 공연하는 라몬 카랄트 극단의 좌석은 이미 매진되었고, 돈 마놀로 프레시의 오페라 극단 공연 입장권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무언극과 무대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옷을 갈아입는 묘기를 벌이는 산타낼라스, 폴리스 베르게르와 함께 공연하는 무용가 다니제 드알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