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지는 제 1문의 현판에 걸레질을 하다 말고 다가서는 허준을 발견하고 동작을 멈추었다. 주변 동료들과 농지거리를 할 만큼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으나 상대가 허준인 걸 알고도 별로 반가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정상구와 우공보가 부산하게 저들의 보따리 속에서 지필묵을 꺼내 갈겨쓰기 시작했다.그 소란 속에서도 유의태는 카악! 눈을 치뜨고 날뛰는 임오근을 쏘아 본 채 미동도 않았다.밀양 부내로부터 60리. 밀양과 울주의 군계를 이룬 천황산의 수려한 능선을 발견한 것은 일행이 산음을 떠나온 다음날 밤중이었다.이십수 년 전에 있었다는 그 일을 아직도 말이오?고명한 아비로부터 일일이 손잡아 의술의 진수를 가르침받는 도지의 처지가 온몸이 떨리도록 부러 웠다.남아 있는 자가 할 일이지 어찌 매번 내가 알아 있어야 한단 말이냐!영문을 물어보았사오니까?응?그들의 피도 우리 피처럼 붉었습니다. 소인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문둥이라는 병자였을 뿐올시다.그제야 병자는 아이고 의원님! 하고 허준의 손을 더듬어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참고 참았던 한마디를 털어놓으며 마구 몸을 떨었다.거창 어간에 몇 사람 유랑하는 환자가 있다는 기별이 있어 데리러 갔습니다.지 병을 허준이 그 사람이 손수 진맥했어예. 손마디가 길쭉하이 그렇데요. 그러고 사람 눈매가 우예 그리 조용하이 그렇십니까. 물어보는 말 수도 적고 어찌 보이 색시 같애얘.병부를 다시 만들고 사흘 만에야 집에 돌아온 허준을 둘러싸고 어머니 손씨와 아내 김씨가 유의태의 부름을 받은 사실을 기뻐하면서도 풀어지지 않는 두 사람의 응어리만은 아쉬운 얼굴이었다.10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비록 사람의 몸속을 들여다보기를 열망하오나 그렇기로 제 손으로 어찌 스승님의 몸을 갈가리 칼질을 하오리까. 난 못하오.귀는 이부, 눈은 안정, 눈썹은 안정썹, 눈물은 옥루로허준의 손이 다시 병자의 엄지발가락 옆을 더듬어오르다가 지그시 누르자 그 손 밑에서 굵은 맥이 둔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어 수건을 꺼낸 허준이 손에 감고 병자의 좌우
떠나겠습니다. 제 요량으로는 .병부를 다시 만들고 사흘 만에야 집에 돌아온 허준을 둘러싸고 어머니 손씨와 아내 김씨가 유의태의 부름을 받은 사실을 기뻐하면서도 풀어지지 않는 두 사람의 응어리만은 아쉬운 얼굴이었다.. 여러 해 됐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차츰 병증이 손끝에 만져즉면서 곧 알았지. 이놈이 나를 저승으로 데불고 가는 사자로구나. 하고 . 훗훗!대답 없는 아들의 과묵한 입매에 더 캐묻지 않고 어머니가 가족을 대신해 물었다.2보다시피 워낙 후미진 골인데다 돈없이 사니께 설사 병이 들어두 의원이라군 모르고 사는 불쌍한 것들이지유. 기왕 오신 김에 부디 몇 사람만이라도 더 병을 봐주고 가세유.그 얘긴 누누이 들었소.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구요? 그럼 처사님의 눈으로는 그분이 이곳에 있는 것이 돈이나 버는 일로 보이옵니까?사람들의 흥미는 그쪽에 쏠려 있는 듯했다.이상이 없었다. 아니 일견 이상이 없어 보이는 그 살가죽 밑에서 곶감덩이 같은 미심쩍은 어혈뭉치같은 것이 만져지고 있었다.부간 의를 끊으신 후 우리 문도들 모두 조만간 이런 분부가 계시리라 짐작했던 바올시다. 어제 임오근의 난동도 스승님의 그 결심과 무관하지 않고요.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도 자기와 헤어져 살 것을 원치 않을 것이요 허준 또한 가족과 헤어져 살 순 없었다. 더구나 안형이 부식하고 사지가 오그라든 환자들의 그 끔찍한 모습이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들의 모습 위에 잠시나마 겹치는 상상만으로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부엌에 두 개씩이나 있지유.마음을 놓아도 된다니 댁에선 이 병을 어찌 알기에?그 말도 마음에 드네.그 손을 물리친 유의태가 풀어헤친 옷깃을 여미고 옷고름을 매기 시작했다.내가 사례는 할 테니 제발 누구 한 사람 좀 깨워나 주시우. 사정은 내가 할 테니께요.아직 갈 길이 2백40리가 남았소. 2백40리가 뭐요. 근 20리 되돌아왔으니 2백60리가 남았는데 이 병자들 상대로 여기서 무얼 어쩌잔 거요?잘 알지 못하오나 자주 들었고 뒷바라지하며 함께 사노라니 조금은 아옵니다.시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