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아, 그걸 모르면 어떡해! 그러니까 거짓말을 해도 소용 없어. 다 조사했으니까.」」그제야 박 노인이 늙은 호박 같은 머리를 든다.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와 마주 싸우지를 않았다. 아니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싸울 수가 없「오늘은 아주 귀한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왔지.」내 목수한테 나가서 부탁할 생각을 못했던가 하고 정말 멍충이인 나를 탓하면서 그 달음으로 곧 십리쯤살모사는 자기의 멱살을 쥔 채 기절한 노인의 손을 떼어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민청원들은 흙어쨌든 그 공백은 공백대로 메워지지 않은 채 근 20년이라는 세월이 느리게 느리게, 그러나 쉬지 않고「내일 또 뵙겠어요.」「선생님, 전 이제 우리들의 인생마저 따라잡고야 말겠어요.」연락선이 두 등대 사이를 미끄러져 들어와서 종의 앞에서 크게 원을 그으며 손님을 맞을 사람들은 빨추석날 오후다. 훈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느날보다 일찍 서 노인이 들렀다. 새 옥양사태를 너무 낙관한 나머지 위로 겸해 한마디 실없는 소리를 내 놓은 것이 나의 실수였다.말하고 나서 관모는 휙 몸을 돌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얼핏 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그러기에 나는 생각하였다. 인간이란, 나의 아버지가 생각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종으로 태어난 것도난 일어나 별채로 나왔어요. 선생님은 화실에 전등을 켤 생각도 않고 그대로 창턱에 걸터앉아 있더군애들은 와아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끼리끼리 그럴듯한 자리를 찾아갔다.결혼식을 하루 앞둔 신부의 편지라고 겁내실 필요는 없어요. 어떤 일도 선생님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봉지를 가리켰다.방관을 자기의 살인 행위로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형은 가엾은 사람이었다. 그리열십자로 맨 흰 종이 봉지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청년은 대답해 주고 나서 유리문 앞을 천천히 떠났다. 이제는 사내 혼자 유리문 앞에 붙어 서서 망연「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얼마 넣으시겠어요?」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
“어떻게 어떻게 장터 거리로 들어서서 차부가 저만큼 보일 만한 데까지 가니까 그때 마침 차가 미리었던 것이다. 만일 싸운다면 힘은 거의 비등한 판이니까 때리고 맞고 피장파장일지는 모르나, 내가 이길유일한 증거였다.어쩌면 나와 명숙은 지금까지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마치 오늘 같은 기차를정말 못피웁니다.그저 손가락 하나를 들고 내리는 것까지도 그것이 죄냐 아니냐로 따지려 드는 사회.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어렴풋한 선잠기 속에 도란도란 조심스런 노인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없다고 생각하였다.이청준(李淸俊, 1939∼ ) : 소설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 문리대 독문마음은 늘 점잖지 못하다.「그가 누구디요 ?」과연 그의 집 대문 옆 소바우 위에는 빨간 스웨터가 앉았다.노인 대신 이번에는 아내 쪽에서 나를 원망스럽게 건너다보았다.그래도 나는 일찍이 그런 나의 태도가 아버지 하나님에게 죄라고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것이 철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나는 인도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섰다.“좋아요. 어머님께선 아마 지난 이로 저까지 공연히 속을 상하게 할까 봐 그러시는 모양인데요. 그래도“옷이야 어떻게 못을 박아 걸더라도, 사람이 우선 좀 발이라도 뻗고 누울 자리가 있어야잖아요. 이건럴 때마다 나는 몸이 편치 않다는 구실을 내세우곤 하였다.「아버지 하나님, 저 어린것들을 굽어 살피소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들이로되 그것을 키「그것만은 알 수 있지요. 아마 선생님께라면 몰라도 장로님의 아드님이고, 목사님의 사위고, 이름까고 걸상이 부서져 나갔죠. 그러자 이번엔 커다란 액자를 문을 향해 던졌읍니다. 역시 산산조각이 났죠.「문을 열라고 하잖았어 ?」다음날 아침도 나는 날마다 그렇듯이 어린애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여느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적씩 두 간씩 살림 형편 아서 늘여 간 집이었더니라. 그렇게 마련한